경매로 임야를 싸게 낙찰받았는데 현장에 가 보니 남의 묘 서너 기가 있다 — 토지 분쟁 상담에서 가장 흔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내 땅이니 파 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묘에 분묘기지권이 성립해 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분묘기지권이란

남의 땅에 설치된 분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분묘의 기지(터) 부분을 사용할 수 있는 관습법상 지상권 유사의 물권입니다. 민법에 조문이 없는데도 대법원이 오랜 관습을 법으로 인정해 왔고, 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은 장묘문화가 달라진 지금도 이 관습법이 유효한지 정면으로 다룬 끝에 장사법 시행일(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는 여전히 유지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성립하는 세 가지 경로

유형성립 요건지료
승낙형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설치약정에 따름
양도형자기 땅에 묘를 쓴 뒤 이장 특약 없이 토지만 처분성립한 때부터 지급 의무
시효취득형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 기지 점유청구한 날부터 지급 의무

양도형의 지료는 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다295892 판결이, 시효취득형의 지료는 아래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기준입니다.

2001년 1월 13일 — 모든 판단이 갈리는 날짜

2000년 1월 12일 법률 제6158호로 전부 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2001년 1월 13일 시행되면서 규칙이 바뀌었습니다.

  • 시행 이후 설치된 분묘: 토지 소유자 승낙 없이 설치한 분묘의 연고자는 토지 사용권이나 분묘 보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제27조 제3항). 즉 시효취득형 분묘기지권이 생기지 않습니다. 분묘 설치기간도 30년으로 제한되고 1회에 한해 30년 연장할 수 있습니다(제19조)
  • 시행 전에 설치된 분묘: 이 규정들이 적용되지 않아(부칙), 20년 점유로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할 수 있다는 관습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 2017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확인한 부분입니다

실무에서는 결국 그 묘가 언제 설치됐는지가 첫 번째 쟁점이 됩니다. 비석의 기재, 항공사진, 제적등본과 묘적부, 마을 주민 진술 등이 증거로 쓰입니다.

토지 소유자의 대응 — 지료 청구가 출발점입니다

공짜로 참으란 법은 없어졌습니다.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은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설치되어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에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하면 그 청구한 날부터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과거분까지 소급해 받지는 못하지만, 내용증명 등으로 청구한 시점부터는 받을 수 있습니다.

지료 청구 이후의 흐름도 판례가 열어 두었습니다.

  1. 청구 — 내용증명으로 지료를 청구하고, 협의가 안 되면 지료청구 소송으로 법원이 액수를 정합니다
  2. 연체 시 소멸청구 — 판결로 정해진 지료를 책임 있는 사유로 2년분 이상 연체하면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결(2015. 7. 23. 선고 2015다206850)이 있습니다
  3. 수호 중단 — 분묘기지권은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를 계속하는 동안 존속하는 권리이므로, 후손이 관리를 그만두고 분묘가 사실상 폐묘 상태가 되면 소멸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굴이(이장) 청구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한 분묘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소송으로 가도 패소하는 쪽은 토지 소유자입니다.

무연고 분묘 — 공고 후 개장 절차

연고자를 알 수 없는 분묘(장사법 제27조가 적용되는 경우)는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의 개장 허가를 받아 처리합니다. 미리 3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연고자에게 통지하고, 연고자를 알 수 없으면 그 뜻을 공고하며, 공고기간이 끝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화장한 뒤 유골을 일정 기간 봉안했다가 처리하고 관할 시장 등에게 신고합니다. 다만 분묘기지권이 성립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분묘라면 이 절차를 밟기 전에 반드시 법률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 함부로 개장하면 형사 문제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묘 있는 땅 매수 체크리스트

  1. 현장 확인 — 등기부·토지대장에는 분묘가 안 나옵니다. 위성사진과 현장 답사로 분묘 수·위치를 확인합니다
  2. 설치 시기 추정 — 2001년 1월 13일 전이면 분묘기지권 성립 가능성을 전제로 가격을 판단합니다
  3. 연고자 파악 — 관리 흔적(벌초·비석)이 있으면 연고자가 있다는 뜻이고, 협의 이장 비용을 예산에 넣어야 합니다
  4. 담보 가치 — 분묘가 있으면 감정평가에서 감액 요인이 됩니다. 대출 계획이 있다면 토지담보대출 글에서 평가 구조를 먼저 확인하세요
  5. 계약 특약 — 분묘 처리 책임·비용 부담·미이행 시 해제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합니다

개발 목적이라면 분묘 문제와 별개로 산지전용허가 요건을, 경계가 불분명한 임야라면 지적측량을 함께 챙겨야 합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판례 원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에서 사건번호(2013다17292, 2017다228007)로 검색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