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살다 보면 이런 상황이 꼭 한 번은 생겨요. 보일러가 안 켜진다, 화장실 수전에서 물이 샌다, 벽에 곰팡이가 올라온다. 이럴 때 “집주인한테 얘기해야 하나, 내가 그냥 고쳐야 하나” 고민되죠.
연락하자니 눈치 보이고, 내 돈으로 고치자니 억울하고. 사실 이 문제는 법에 기준이 있어요. 뭘 집주인이 고쳐야 하고 뭘 세입자가 고쳐야 하는지, 민법에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수선의무, 법에서 뭐라고 하나?
민법 제623조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쉽게 말하면, 세입자가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건 집주인 책임이라는 거예요. 보일러가 고장 나서 난방이 안 되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집주인이 고쳐야 하는 거죠.
반면, 민법 제374조에 따르면 임차인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 집을 관리해야 해요. 집을 함부로 다루거나, 관리를 소홀히 해서 생긴 문제는 세입자 책임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대규모 수선(주요 설비, 구조) → 집주인 부담
- 소규모 수선(소모품, 간단한 교체) → 세입자 부담
- 세입자 과실로 인한 손해 → 세입자 부담
항목별로 누가 부담하는지 정리
실제로 가장 많이 분쟁이 생기는 항목들을 정리했어요.
집주인이 부담하는 것 (대규모 수선)
| 항목 | 구체적 예시 |
|---|---|
| 보일러 | 고장, 교체 (노후로 인한 경우) |
| 배관 | 급수·배수관 파손, 누수 |
| 방수 | 천장·벽 누수, 화장실 방수 불량 |
| 창문·문 | 창틀 파손, 잠금장치 고장, 문짝 뒤틀림 |
| 전기 설비 | 배전반 고장, 누전, 콘센트 합선 |
| 외벽·지붕 | 균열, 빗물 침투 |
| 풀옵션 가전 | 입주 시 제공된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고장 |
풀옵션으로 들어간 집에서 에어컨이 고장 나면, 그것도 집주인 책임이에요. 입주할 때 집주인이 제공한 가전이니까요. 다만 세입자가 관리를 소홀히 해서 고장 난 거라면 (예: 에어컨 필터를 한 번도 안 청소해서 고장) 세입자 책임이 될 수도 있어요.
세입자가 부담하는 것 (소규모 수선)
| 항목 | 구체적 예시 |
|---|---|
| 전구·형광등 | LED, 형광등 교체 |
| 수전 패킹 | 수도꼭지 고무 패킹 교체 |
| 배수구 | 배수구 망, 머리카락 막힘 해결 |
| 도어록 배터리 | 디지털 도어록 건전지 교체 |
| 환풍기 필터 | 주방·화장실 환풍기 필터 |
| 실리콘 | 욕실 실리콘 재시공 (경미한 것) |
이런 소모품 수준의 교체는 세입자가 하는 게 맞아요. 비용도 보통 몇 천 원 ~ 1만 원 수준이라 분쟁이 될 일은 적습니다.
애매한 것들
| 항목 | 판단 기준 |
|---|---|
| 곰팡이 | 구조적 결로 → 집주인 / 환기 소홀 → 세입자 (입증이 어려워서 분쟁 많음) |
| 도배 오염 | 자연 변색 → 집주인 / 담배·얼룩 → 세입자 |
| 변기 막힘 | 노후 배관 문제 → 집주인 / 이물질 투입 → 세입자 |
| 에어컨 청소 | 기본 필터 청소 → 세입자 / 분해 세척(고장 수준) → 집주인 |
곰팡이가 특히 애매해요. 집 구조상 결로가 심해서 생긴 건지, 세입자가 환기를 안 해서 생긴 건지 판단하기 어렵거든요. 이런 경우는 사진을 찍어두고, 집주인에게 연락한 기록을 남겨두는 게 중요합니다.
”전세는 세입자, 월세는 집주인” 아닙니다
이런 오해가 꽤 퍼져 있어요. “전세는 세입자가 고치고, 월세는 집주인이 고친다.” 이건 잘못된 상식이에요.
민법상 수선의무는 전세든 월세든 동일하게 적용돼요. 임대 형태가 아니라 수선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부담 주체가 결정됩니다. 전세든 월세든 보일러가 고장 나면 집주인이 고쳐야 하고, 전구가 나가면 세입자가 갈아야 해요.
수선의무 면제 특약, 어디까지 유효할까?
계약서에 “집의 모든 수리는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특약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특약, 전부 유효한 걸까요?
대법원 판례(94다34692) 에 따르면, 수선의무 면제 특약은 소규모 수선에 대해서만 유효해요. “건물의 주요 구조 부분에 대한 대수선, 기본적 설비 부분의 교체 등과 같은 대규모의 수선”은 특약으로도 면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수리는 세입자 부담”이라는 특약이 있어도, 보일러 교체나 배관 수리 같은 큰 수선은 여전히 집주인 책임이에요. 이 특약이 있다고 쫄지 마세요.
| 특약 효력 | 소규모 수선 | 대규모 수선 |
|---|---|---|
| 특약 없음 | 세입자 | 집주인 |
| ”수리 세입자 부담” 특약 | 세입자 (유효) | 집주인 (특약 무효) |
수리 요청할 때 이렇게 하세요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 방법입니다.
증거부터 남기세요
고장이나 하자가 생기면 바로 사진·동영상을 찍어두세요. 누수면 물이 떨어지는 모습, 보일러면 에러 코드가 뜬 화면, 곰팡이면 발생 범위를 알 수 있게 넓은 사진과 가까운 사진 모두 찍어두세요.
문자나 카톡으로 연락
집주인이나 부동산에 연락할 때 전화보다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하세요. “보일러가 고장 났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문자를 보내면 나중에 “그런 연락 받은 적 없다”고 부인할 수 없거든요. 사진도 함께 보내면 더 좋아요.
집주인이 안 고쳐주면
연락을 해도 반응이 없거나, “세입자가 알아서 고쳐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 수리 후 비용 청구가 가능해요. 민법 제626조에 따라, 임차인이 필요비(집의 보존에 필요한 비용)를 지출했으면 임대인에게 즉시 상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내가 수리비를 냈다면, 그 비용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는 거예요.
다만 이렇게 할 때는 몇 가지를 지켜야 해요.
- 수리 전에 집주인에게 연락한 기록이 있어야 해요 (문자, 카톡)
- 합리적인 수준의 수리를 해야 해요 (가장 비싼 업체를 부를 필요 없음)
- 영수증과 견적서를 반드시 보관하세요
비용 청구에도 안 주면 보증금에서 공제하거나, 월세에서 공제하는 방법도 있어요. 다만 이건 분쟁 소지가 있으니 법률 상담을 먼저 받아보는 게 안전합니다.
계약할 때 이것만 확인하세요
수리비 분쟁을 예방하려면 계약 단계에서 미리 정해두는 게 최선이에요.
- 특약 확인: “모든 수리 임차인 부담” 같은 포괄적 특약 대신, “1회 10만 원 이하 소규모 수선은 임차인, 그 이상은 임대인”처럼 금액 기준을 넣어두면 분쟁이 줄어요
- 설비 상태 점검: 입주 전에 보일러, 에어컨, 수전, 배수 등을 직접 작동시켜보세요. 문제가 있으면 입주 전에 수리를 요청하세요
- 기존 하자 기록: 입주할 때 이미 있는 하자(벽 균열, 곰팡이 흔적 등)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계약서 특약에 “기존 하자 목록”으로 명시해두면 나중에 퇴거할 때 분쟁을 피할 수 있어요
수리비 부담 핵심 정리
| 구분 | 집주인 (임대인) | 세입자 (임차인) |
|---|---|---|
| 기준 | 대규모 수선, 주요 설비 | 소규모 수선, 소모품 |
| 대표 항목 | 보일러, 배관, 방수, 창문 | 전구, 수전 패킹, 배수구 |
| 특약 효력 | 면제 불가 | 면제 가능 |
| 과실 책임 | - | 세입자 과실이면 세입자 부담 |
| 전세/월세 차이 | 없음 (동일 기준) | 없음 (동일 기준) |
수리비 문제로 집주인과 갈등이 생기면 스트레스가 크죠. 하지만 법에 기준이 있으니까, 기준을 알고 대응하면 됩니다. 핵심은 증거를 남기고, 문서로 소통하는 것이에요. 사진 찍어두고, 문자로 요청하고, 영수증 보관하세요. 이 세 가지만 해도 대부분의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장마철 침수처럼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책임 소재가 더 복잡합니다. 장마철 침수 피해 임대인·임차인 책임 정리에서 상황별 책임 구분을 확인해보세요.
이 글은 2026년 2월 기준 민법 제623조, 제626조, 대법원 판례(94다34692)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개별 사안은 법률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